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룬 알 라시드 (문단 편집) ==== 훌륭한 내치 ==== 하룬은 즉위 직후 바그다드 대모스크에서 금요일 기도를 주관한 뒤 관리들과 평신도들의 충성 맹세를 받아냈다. 즉위 당일에 이란 노예 마라질에게서 맏아들 아브드 알라를 낳았는데, 그는 이것을 좋은 징조로 해석했다. 이후 알 하디 시대의 고관들과 총독들을 대거 축출하고 야히야 이븐 칼리드 등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로 교체했다. 하지만 그의 권력은 초기에는 어머니 카이주란과 야히야 이븐 칼리드에 의해 억제되었고, 전반적인 통치는 어머니 카이주란이 주도했다. 788년 [[하산 이븐 알리]]의 후손 야히야가 타바리스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그녀는 즉시 5만에 달하는 토벌대를 야히야 이븐 칼리드에게 맡겨 진압하게 했다. 하지만 같은 무슬림끼리 피를 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야히야 이븐 칼리드는 신변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반란을 일으킨 행위를 사면해줄 테니 귀순하라고 권고했다. 알리의 후손 야히야는 이길 가망이 없다는 걸 파악하고 항복한 뒤 바그다드로 후송되어 한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5개월 후 긴급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 뒤 가혹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 789년 어머니 카이주란이 사망하면서 비로소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그는 내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비툴 히크마(지혜의 집)을 세우고 학자들을 그곳에 배속시켜서 국정에 관한 조언을 하게 했으며, 법학가, 시인, 수학자, 과학자, 음악가 등 다방면의 뛰어난 인물들을 궁정에 들였다. 특히 이슬람 세계의 화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이븐 하이얀이 이 시기에 하룬의 궁정에서 활약했다. 또한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아르키메데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데모스테네스]], [[피타고라스]], [[갈레노스]] 등 고대의 현인들이 집필한 저서들을 번역했으며, 인도로부터 인도 숫자와 0의 개념, 아유르베다 의학 등을 수입하고 중국으로부터 연금술과 종이, 비단, 도자기 기술을 습득했다. 이렇듯 그의 통치 아래 예술과 문화가 융성하고 유능한 관리들이 국정을 잘 이끌면서, 아바스 왕조의 국력은 갈수록 강력해졌고 바그다드는 당대에 가장 화려한 도시로 번영했다. 796년, 하룬은 [[유프라테스 강]] 중류 지대의 라카로 수도를 옮겼다. 이후 그는 바그다드를 딱 한 번 방문했다. 라카는 동로마 제국 국경과 근접해서 동로마군이 쳐들어올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고, 유프라테스 강을 통해 바그다드와 접하고 발리크 강을 통해 다마스쿠스로 이어지는 훌륭한 연락망을 구축할 수 있었으며, 풍부한 농경지를 보유했고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발발할 수 있는 반란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다시 호라산의 수도인 레이 시로 이동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통치했다. 그는 제국 전체의 관리를 위해 스승이자 오랜 동료인 야히야 이븐 칼리드에게 의지했고, 야히야와 아들들을 비롯한 바르마크 가문 인사들은 그가 맡긴 임무를 17년간 충실하게 수행했다. 또한 각 도시에는 자체 법 집행기관이 세워져 질서를 유지했고, 도박, 고리대금, 술 판매와 같은 불법 행위를 단속하는 기관도 수립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